2024. 9. 22. 21:49ㆍWriting
해당 글은 개발자 글쓰기 모임 글또 10기의 지원을 위한 "자신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 삶의 지도"에 대한 글입니다.
삶의 지도라는 너무나 막연한 단어 앞에서 회피하기를 2일, 추석 연휴 핑계를 3일 쓰고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태로 모니터 앞에 앉았습니다.
벌써 이렇게나 많은 분들이 지원하셨더라구요. 개인적인 이야기를 블로그에 쓰는 것이 익숙하지는 않지만 어떻게 해서 지금의 일을 하고 있는지 천천히 적어보도록 하겠습니다.
2016,
커리어 우먼에 대한 막연한 동경은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와 같은 영화를 몇 번이고 돌려봤기 때문일 것입니다. 카리스마 있는 편집장의 모습을 보여준 ‘미란다’(메릴 스트립), 압박 속에서도 누구보다 일에 열정적이었던 ‘에밀리’(에밀리 블런트), 무엇보다도 아무것도 모르는 채 패션 업계에 들어와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준 ‘앤디’(앤 해서웨이). 그들과 같은 업계는 아니었지만 ‘멋’ 하나로 이과를 선택한 저는 우선 공대를 가기로 결심했습니다. 기술이 있다면 언젠가는 업계에서 인정받는 커리어 우먼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2017,
대학 생활이 마냥 순조롭지는 않았습니다. 20년간 자라온 대구를 떠나 자취를 시작하고, 중고등학교 내내 붙어다닌 친구들과 떨어지고, 생활비를 위해 아르바이트를 구해야 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습니다. 좋은 교수님을 만나 연구실 생활을 했던 때도 있었지만, 진득하게 앉아 논문을 보고 실험하는 것이 몸에 맞지 않았습니다. 당장 연구실 밖을 뛰쳐나가 사람들의 삶에 맞닿아있는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어요. 그렇게 극심한 방황기를 거치다 결국 교환학생이라는 도피를 선택하고 휴학을 하기로 했습니다.
2020,
휴학은 커다란 전환점이었습니다. 계획적으로 준비한 도피는 코로나로 무산되었지만, 기왕 시작한 휴학 해보고싶었던 일은 다 해보기로 했습니다. 한창 오아시스의 음악에 빠져있던 시기였기 때문에 드럼을 배웠고 작은 공연에도 참여했습니다. 규칙적인 생활을 위해 낮에는 아르바이트를 했고, 저녁에는 킥복싱을 배웠습니다. 주말에는 최은영, 황정은, 구병모와 같은 작가들의 책을 들고 카페로 향했습니다. 전공이었던 의공학과는 아무 관련 없었던 일 년이었어요.
2021,
역설적이게도 이런 한 해를 보내고 나니 다시 공부가 하고 싶어졌습니다. 컴퓨터 과학을 처음 접한것은 복학을 앞둔 방학, 호기심에 지원한 네이버 부스트코스에서였습니다. 함께 공부하는 사람들과 응원해 주시는 멘토님이 계셔서인지 문제를 해결하면서 전에 없던 성취감과 뿌듯함을 느낄 수 있었어요. 간단한 게임을 만들더라도 생각한 것을 직접 구현하는 것이 얼마나 설레는 일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복학 후에도 여전히 의공학도였지만 전공 수업 중 우연히 빅테이터 수업을 듣게 되었어요. 수업에서는 의료 이미지를 분석해 질병 진단을 돕는 것과 같은 다양한 사례를 접했는데, 데이터가 사람들의 삶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을 배운 순간이었습니다. 이후로 졸업과는 무관한 컴퓨터 공학과의 수업을 듣고, 코드스테이츠의 AI 부트캠프에 참여하면서 데이터 전문가의 꿈을 키워갔습니다. 공부를 하며 접근하기 쉽고 신뢰할 수 있는 데이터가 중요하다는 것, 데이터 엔지니어링의 필요성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2022 - 현재
부족한 CS 공부와 코딩테스트 준비를 거쳐 운이 좋게도 KT 계열사의 신입공채에서 DA(Data Architect) 직무로 합격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통신사의 방대한 데이터를 볼 수 있다는 것에 설레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운영 업무를 반복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준비한 데이터가 어떻게 쓰이는 지 알 수 있는 환경, 서비스를 만드는 회사로 저를 던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수많은 불합격과 고통스러운 자기 객관화의 과정을 거쳐 올해 5월 이직을 했습니다. 현재는 온라인 교육 서비스를 하는 회사의 5개월 차 데이터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습니다.
글을 쓰는데 하루가 꼬박 걸렸습니다. 대학 때 썼던 일기들을 다시 열어보면서 겁이라고는 없었던 그때를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에너지가 넘치는 만큼 감정도 치솟았다 바닥을 치길 반복했고 자의식 과잉 상태에 빠져있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한결같이 응원해 준 사람들과 시기 좋게 따라준 운 덕분에 프라다 구두 대신 맥북을 끌어안은 지금의 제가 될 수 있었습니다🧑🏻💻
이제는 그다음단계를 생각할 시기인 것 같습니다. 이직을 한 이후에는 *절망의 계곡에 빠져 너무 운이 좋았던 것이 아닌가, 여기가 내가 있을 분야가 맞는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글또 삶의 지도를 계기로 설렜던 시작을 기억하고, 빠져버린 계곡을 무사히 기어나와보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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